며느리 의무 거부하러 갔다 진짜 가족 된 썰

B급 며느리를 보고 대단한 결심을 했다. 지난 주말에 있던 시댁 제사에 가지 않았고, 어제는 룸이 있는 조용한 식당을 예약해 앞으로 제사와 명절 같은 며느리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전하려 시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나에게 주어진 의무나 역할 때문에 나는 남편의 부모님이 어떤 분들인지는 잘 몰랐으나 의외로 쿨하셨다. 명절 전에 오겠다 하여 ‘얘네가 명절에 안 오겠다는 말을 하겠구나’ 예상하고 나오셨다고 하셨다. (물론 며느리 의무를 전부 거부하고 싶다(제사와 차례 모두) 말씀 드렸으나 그런 의사로 받아들이시지는 않으셨다. 뭐 예상은 했다, 어른들과의 대화는 늘 이러니까… :'( )

나는 이날 어머님이 하신 말씀은 참 뼈 아프게 느껴졌다. 어머님은 아버님과 결혼 하신 걸 한번도 후회해 본 적 없고, 다시 태어나도 아버님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까지 하고 계실 정도로 결혼생활에 만족하지만 “일년에 딱 네번, 혼자 살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하셨다. 바로 명절과 제사를 앞둔 날이다. 어머님께 “정말 가부장적이던 우리 큰집도 요샌 기도로 끝낸다” 말씀 드렸더니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 하셨다. ㅋㅋㅋ

 

다만 우리가 룸이 있는 방으로 예약을 잡아서 우리가 결혼 후 4년동안 한 번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2세 얘기를 꺼내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나오셨다 했다. 나는 딱히 아이를 낳고 싶지 않거나 육아가 싫은 건 아니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임을 말씀드렸다.

선배로부터 “네가 3년 안에 애를 낳으면 회사 입장에서 너무나 큰 손해다”, “피임은 잘 하고 있냐”를 비롯한 언어 성폭력, 감정적 폭력을 1년 넘는 시간동안 겪고 최근에 이직을 했으며, 내가 기혼이 된 뒤로 일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이는 언제 낳을거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지만, 아무도 자신의 호기심이 나에게 폭력으로 다가올 거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는 혼밥을 한다. 직업인 9년차가 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선배도 나를 대하는 것이 불편해야 그나마 권력이 조금이라도 덜 기울여진 상태로 지낼 수 있다’는 것. 인간관계도 줄이는 미니멀리즘 시대에 굳이 나와 잘 맞지도 않는 사람과 회사에서 자주 본다는 이유로 사적 영역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개인의 사생활’은 개인을 찌르는 칼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다음엔 경제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직장 생활 9년동안 직업이 몇 번 바뀌긴 했지만, 나는 지금 첫직장에서 받은 연봉보다 딱 200만원 오른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첫 직장에서 만난 언니들은 내가 한 말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회사가 생기고 최저임금이나 버스요금이 몇 번이나 올랐지만 왜 초기에 세팅된 초봉이 전혀 오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그 회사를 그만 뒀다). 나는 사회에서 임금 이상의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고용한 사람이 일을 하고 한달을 버티고 미래를 꿈 꿀 정도의 임금을 줘야 한다는 고용자를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런 질 낮은 직장마저 애를 낳으면 경력단절녀가 되어 다닐 수 없는 것이 현실임을.

이게 내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부으며 ‘커리어 우먼’으로 거듭난 결과다. 난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 대신 ‘어린여자’로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애 낳을 여자’로 살고 있다. 일을 좋아하지만, 그와 별개로 일하면서 느끼는 좌절감과 부당함이 너무 크고, 시간이 지날수록 박탈감과 힘듦이 점점 커지기 때문에 내 아이가 태어나 나와 똑같은 인생을 살게 되면 너무나 가슴 아플 것 같아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말씀 드렸다.

(이런 이야기가 언론에는 매일 꾸준글로 소개되지만 직장에서 만나는 선배들은 당연히 내가 임금노동자이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며 취미생활도 하고 저축도 한다고 생각하며 나를 대한다.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이들이다.)

이런 이야기까지하려고 만든 자리는 아니었지만, 아버님은 힘든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고 어머님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시며 ‘누가 뭐래도 너희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며 선을 그어주셨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아이 이야기는 이렇게 수습됐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4년만에 처음으로 가족이 됐다.

 

 

팜(Farm) 파탈 농업 전문기자에게 듣는 몰랐던 얘기

동아일보 출판국 구희언 기자에게 인터뷰 당했습니다.

기자는 보통 남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사람인데 남이 저에게 물으니 그동안 인터뷰이들이 얼마나 고충이 많았을지 이해가 되네요. ㅋ

(왜 취재원들이 답을 전부 뜯어 고치고 싶어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ㅋ)

설명을 더하자면 저는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일하다 잡지기자, 그리고 농업단체 활동가, 다시 잡지기자로 일하다 지금은 농업전문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8년동안의 직업생활 커리어가 좀;; 이상하죠? 하지만 인터뷰 보심 좀 이해가 되실지도 몰라요.

자세한 글은 팜(Farm) 파탈 농업 전문기자에게 듣는 몰랐던 얘기(링크)에서 봐주세요. 🙂

 

 

지렁이는 지렁지렁

지렁이를 키운지 열흘째다.

지렁이가 사는 흙에서 전기를 생성하는 에너지 하베스팅 워크숍에서 입양받은 지렁이로, 지렁이로 전구 켜는 것보다 지렁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신청해 분양까지 받았다.

우리집 베프랑 손 잡고 가서 각자 한 통씩 받아왔는데 둘이 살면서 밥도 잘 안 해먹는데 음식물을 남기면 얼마나 남기나 싶어 한 통은 다른 페친에게 나눔했다.

다른 지렁이 1통을 가져간 페친은 다행히 세번째(!) 이사를 가게 된 비운의 지렁이 100마리 가량도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특히 지렁이 상태가 좋지않아 책도 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렁이들이 좋은 분을 만나 다행이라는 안도와 폭풍 감동을 받았다. 🐛❤️

암튼 우리집 지렁님들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자면, 우리집 지렁이 가족들도 아직은 두 번의 이사와 온도 변화를 적응하지 못하시는지 넣어놨던 음식물도 아직도 드시지 조차 못하고 계신다.
그래도 나름 상태가 호전되고는 있다.
10마리 정도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시고(R.I.P…), 나머지는 이제 좀 움직임에 생기가 돈달까.
예전처럼 축 늘어져서 가까스로 움직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아마 다음주 쯤이면 밥도 먹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지렁이가 많이 회복된 데엔 화분받침을 이용해 바닥이 닿는 면을 띄워서 통풍이 잘 되게 한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근데 통풍이 너무 잘 되니까 흙이 금방금방 말라서 물을 자주 뿌려줘야 한다는 귀찮음도 있다.

 

하지만 생명을 키우려면 자주 보고, 돌보는 것도 필요하다.

물을 뿌려주니 마구마구 꼬물꼬물 대며 좋아하는 모습이 은근 힐링 되기도 하고.
우리집 새 가족들을 사진으로 인증하고 싶지만, 눈으로 보면 나름 귀여운데 사진만 찍어놓으면 혐오스러워져서 일단 사진은 패쓰.

더 잘 키워서 육아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