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온 완두콩 이야기

식물을 길러서 먹는 행위를 좋아한다. 특히 잘 키워서 씨앗을 나눠줄 수 있는 토종씨앗은 더욱 매력적이다(시중에 개량되어 나온 씨앗들은 씨앗을 심어도 잘 자라지 않거나, 열매가 달리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매년 옥상 화단을 텃밭삼아 토종 씨앗으로 작은 농사를 짓고 있다. 이제 옥상 농사 경력 3년차, 농사를 지으며 느낀점은 두 가지다. 첫째, 큰 상식 없이도 씨 뿌리면 생각보다 잘 자라잖아? 하는 깨달음.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녀석들이 있다는 거다.

나에겐 완두가 그랬다. 별 상식 없이 심어놓은 대부분의 작물들이 맛보고 나눠줄 만큼은 수확되었고, 진딧물이 작물 한 포기를 감싼 옥수수도 난황유로 무찔렀는데 특별히 병충해의 공격을 받지 않았던 완두는 수확이 안됐다. 파종 후 싹이 잘 나서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크는구나 싶었지만, 결국 씨 뿌린만큼만 거둬들인 참패를 겪어버렸다. 그래서 이번에 완두콩 농사를 다시 짓는 것에 대해 고민을 좀 했는데, <토종이 자란다> 그룹에서 완두콩을 발견했다. 그것도 전 전여농 사무국장이었던 언니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한 번 더 도전해 보자.

작년엔 물에 콩을 불려주지 않고 심어서 그럴까 싶어서 이번엔 하루 전에 물에 불리고 심어줬다. 날이 추워서인지 발아하는데까지 열흘 정도 걸렸다. 키도 작년 완두랑 비슷하고, 내것보다 늦게 심은 이웃집 완두는 벌써 꽃피고 꼬투리 달릴 동안 꽃 한 번 안펴서 이번에도 망한게 아닐까 싶었는데… 늦게 꽃이, 그것도 많이 피었다! 키는 작년과 비슷했을지언정 줄기는 통통한 것이 이번엔 예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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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완두콩 모습(5/22)

 

자랑스러운 마음에 내 SNS에 자랑을 했더니, 오래전에 친구를 맺어뒀다가 교류가 없었던 무안의 여성농민인 선숙언니가 댓글을 달아주셨다.

“제 완두콩이 그곳까지 갔네요. 마치 어릴적에 만난 동화속 다섯알의 완두콩처럼. 그 완두콩이 만날 세상이 궁금합니다. 두근두근 완두콩! 그 완두콩은 제 친정어머니께서 새댁일 때부터 심어 온 종자랍니다. 올봄에 신지연 국장님께 갔습니다. 토종완두콩 속에는 엄마의 인생이 있고, 제 어린 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친정어머니께 물려받아 제가 다시 19년 농민으로 살아 온 날들을 같이 왔는데 새로운 땅에 가서 꽃핀 걸 보니 흐뭇하고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

깜짝 놀라 감사인사를 드렸더니, 되려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씨앗 한 알에 담긴 언니 어머님의 인생과 언니의 인생, 그것을 받아서 토종종자 계승에 새롭게 도전한 전 전여농 사무국장언니의 노력까지. 무안에서 온 완두콩에 나의 이야기까지 담기게 된 것이 영광이기도 하고, 이 종자를 아주 오랜시간 키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야 할 명분이 나에게까지 왔다. 먼 과거에서부터 전해져 왔을 완두가 2016년의 나를 만나게 된 인연에 감사하며 맛있게 먹고,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겠다.

 

덧. 이 완두콩은 2017년, 김이박작가의 손에서 대를 잇게 되었다(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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