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화, 최저가입찰, 하청, 재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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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에 붙은 어느 메모에 적힌 단어들이다. 나도 첫 직업에서 겪었다. 말이 좋아 방송작가였지 저 구조속에서 남들이 가장 신날 대부분의 금요일마다 밤 늦게까지 말번을 서야했고, 늦은 밤, 새벽, 주말을 가리지 않는 수정 요구를 받고 집에서 일을 하거나 사무실에 다시 기어나갔던 일도 비일비재했다. 일년에 딱 일주일 있는 휴가에도 일을 해야했고, 대체휴무나 월차따위가 있을 리 만무해 주말만 무사히 쉬어도 감사해야 했던 시스템이었다. 야근을 해도 야근 수당은 커녕 식대나 (할증이 붙거나 안붙거나) 택시비 조차 지급이 안됐다. 단 한명의 클라이언트만이 그 사정을 배려해 ‘선의’를 베풀어 줬었고, 고마우면서도 참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회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만들어진 임금체계는 버스비가 몇 번 오르고 최저임금이 몇 번 오르는 동안에도, 회사가 수주한 기업들이 늘어나 사정이 좋아졌다고 얘기했던 시기에도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고 동결되었다. 심지어는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 다시 돌아가 일을 시작할 땐, 임금을 깎았으면 좋겠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직장인처럼 9to6로 매일 출퇴근하고, 칼퇴조차 못할 때가 많았지만 고용형태는 프리랜서, 정확히는 ‘상근 프리랜서’라는 개풀 뜯어먹는 소리같은 형태였다. 일을 아무리 많이해도 고정된 돈을 월급으로 받았다. 일을 고정금액과 비슷하거나 적게하는 일은 슬프지만 단 한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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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보람있고 즐거웠고, 함께 일했던 동료나 클라이언트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것과 별개로 이 구조는 끊임없이 사람을 탓하고 미워해야 견딜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비참했고, 위험했고, 다신 돌아가기 싫고, 하루빨리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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