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옥상텃밭

올해는 정말 정신이 없다. 건강이 아주 안좋았고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일이 생겼고, 이직도 했다. 라는건 텃밭에 신경을 잘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

작년에는 난황유를 몇 통을 만들었는지 헤아릴 수 없고, 노들텃밭에 작은 밭까지 운영하면서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는 정말 태평농법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관리하는 작은 화단이 옆집 위에 있는데 이 화단의 방수 문제 때문에 옆집이 물이 샌다고 해서 밭을 세번 정도 뒤집었다. 작물들이 세 번 이사를 갔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우리에게 통보도 없이 강제집행을 하는 바람에(그 덕에 반장 아저씨와 싸우고 지금까지도 쌩까는 사이가 됐다) 해바라기와 부추, 곰취가 멋대로 뽑히기까지 했다. 부추와 곰취는 흙속에 파묻혀 거의 사라졌고, 해바라기도 거의 뿌리만 남아서 포기를 했는데 고맙게도 해바라기 한포기에서 예쁜 꽃이 세 송이나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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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포기했던 토종 해바라기가 이만큼 자랐다. 다른 해바라기가 다 질무렵, 9월 말 정도에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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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기적의 해바라기(?)는 알알이 씨앗을 맺고 있다. 채종용으로 30알 정도 남겨두고 볶아서 술 안주로 먹을 생각이다.

뜻밖의 손님도 등장했다. 바로 파종이나 모종을 심지 않았던 수박. 8월 말? 9월 초 쯤 등장했는데 채소 부산물을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리지 않고 밭에 거름으로 주다 보니 생긴 일이다. 아직도 수박은 꽃을 피우지만 곧 겨울이라 수박은 구경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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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초충도에 나오는 그 이파리랑 똑같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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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박 작가가 선물로 준 코스모스도 활짝 피었다.

 

김이박 작가에게 선물로 받은 코스모스도 활짝 피었다. 처음 모종을 받았을 땐 5cm가 채 안되는 작은 신생아였는데 지금은 100cm도 훌쩍 넘는다. 요새 다른 코스모스들이 지고 있어서 노심초사 했는데 너무 기운차게 자라서 기특하기도 하고 다른 코스모스들보다 너무 튼튼하게 자라서 깜짝 놀랄 정도다. 보통 코스모스가 한 뿌리에 몇 송이 안폈던 것 같은데 이건 봉오리만 30개도 넘는다. 잘 키운 코스모스는 한들한들 하지 않고 우뚝 선 나무같이 자란다는 새로운 발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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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를 확대하면 이렇게 별들이 모여있는 걸 볼 수 있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왜 ‘우주’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지 늘 아리송하다 답을 알아냈다(부지런히 검색만 했어도 진작에 알았을테지만). 별 모양의 화분을 갖고 있어서 란다. 정말 화분을 들여다보니 별이 총총 박혀있다. 씨앗을 잘 받아서 내년에도 우주를 발견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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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나무 위에 풍선초

 

풍선초도 밭이 뒤집히는 바람에 늦게 자랐다. 그렇지만 역시 기운차게 주목나무를 뒤덮었다. 주목나무가 구상나무랑 좀 비슷하게 생긴 면이 있어서 트리 장식같기도 한 비주얼. 풍선초는 1cm도 안되는 꽃이 정말 많이 피는데, 올해 바질을 그리 많이 심지 않았음에도 풍선초 때문에 옥상에 벌이 참 많았다. 이 동네 벌들을 먹여 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에 씨앗을 많이 받아놨다. 내년에도 잔뜩 심어서 동네 벌들을 기쁘게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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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만의 집밥 feat. 옥상 풀

 

옥상의 식물들이 이제 겨울로 접어들 준비를 시작했다. 올해 마지막 토종 배춧잎과 청겨자, 샐러리, 상추를 뜯어 샐러드를 만들고 정말 오랜만에 집밥도 만들어 먹었다. 내년엔 올해는 건너 뛰었던 바질페스토도 꼭하고, 올해 씨를 받아두었던 토마토도 더 잘 키워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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