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그녀에게 스토리를 선물하다 <컵 아티스트 김수민>

고고한 스타벅스 마크 ‘세이렌’이 혼자 고기도 구워먹고, 소파에 누워 TV도 보고, 말춤도 춘다. 이 사람, 도대체 컵에 왜 이런 걸 그리는 걸까? 가장 상업적인 물건에 아트를 하는 남자, 김수민이 궁금하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처음 그를 만난 건, 누군가에게 링크돼 좋아요 버튼이 잔뜩 찍힌 유튜브 영상. 덩그러니 놓인 스타벅스 컵 위를 ‘세이렌’만 남겨두고 흰 물감으로 덮어버리더니 초록색 마커로 그림을 그린다. 위에서 내려 보기도 아래에서 올려 보기도 돌려보기도 하면서 고심하는 듯 보이지만, 다시 단호하게 그림을 그려나간다. 작업과정을 빠르게 편집했지만, 그리는 이의 고뇌가 그대로 느껴진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누구나 빵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할 터. 작가의 손길로 다시 태어난 세이렌은 엉뚱한 몸짓으로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이건 뭘까? 스타벅스 프로모션 행사일까? 이 사람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 순식간에 머릿속이 오만가지 느낌표로 가득 채워진다. 영상을 몇 가지 더 찾아보고, 모든 SNS를 총동원해 사찰했다. 세상에, 단순히 컵에 그림만 그리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프로필이 하도 길어 스크롤을 계속 내려야 한다.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 영업사원이었던 잘난 이력도 있고 통역도 한단다. 오케이, 이번 파워피플은 바로 당신이다.

일상에서 추출한 깨알 웃음
김수민 작가에게 예전의 직장생활은 빼놓을 수 없는 일. 잘 나가는 회사였지만 당분과 카페인으로만 겨우 버텼다. 그림에 대한 열망과 조직생활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2년 만에 모든 걸 버리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그는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컵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김수민 작가에게 컵 아트란 개인의 작품이기 이전에 일상의 기록이기 때문에 남에게 줄 수 없을 정도로 하나하나 각별하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절대 심각하거나 난해하지는 않다. 인터뷰 내내 작품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스테프들에게도 자신도 웃고 싶어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에 유머를 많이 담는다고 얘기한다. 가끔은 그림을 그리다 혼자 피식 웃을 때도 많단다.

한때 된장녀의 상징이었던 콧대 높은 스타벅스의 아이콘 ‘세이렌’이 망가지는 모습도 컵 아트의 묘미이다. 하지만 스타벅스 컵에 그림을 그리게 된 건 지극히 우연과 게으름이 빚어낸 필연이었을 뿐. 작업실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 스타벅스에서 매일같이 커피를 테이크 아웃 했던 그가 조금만 더 부지런해 컵을 재깍재깍 버렸다면 다양한 표정의 ‘세이렌’은 탄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는 작업실을 대청소하며 쌓아둔 컵을 버리려다 아까운 생각에 그림을 그렸다. 빈 종이에 비해 부담이 없어져 상상력이 확장되는 느낌, 그것이 그와 ‘세이렌’의 첫 만남이었다.

아메리카노 트리플 샷의 의식
그럼 그 많은 컵은 대체 어떻게 공수할까? 협찬을 받느냐고 물었더니, 매일 한두 잔의 커피를 구매한단다. 그렇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늘 뜨거운 아메리카노만 마셔야 하는 것이 작가의 고충. 텀블러에 커피를 받고 그냥 종이컵을 달라고 하면 안 되냐고 묻는 사람도 많지만 그에게 있어서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고, 그림을 그리는 일 전부 생략할 수 없는 완전한 작업이다. 한 가지 원칙이 더 있다면 아메리카노는 반드시 트리플 샷으로 주문할 것. 그는 ‘고집’이라 표현했지만, 작품에 임하는 작가의 신성한 의식이 아닐까.

김수민 작가 Q&A Cup
굳이 컵아트를 고집하는 이유는?
컵의 모양이 둥근 모양이라 계속 그려나가다 보면 만나게 된다. 사진을 찍거나 정면에서 보면 일부분만 볼 수 있는데 직접 360도 돌려서 봐야 컵의 전체를 다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 요소다. 그래서 내 작품은 돌려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컵 외의 다른 작업은 하지 않는가
또 다른 개인 작업이 있다면 트위터 에그일러스트가 있다. 예전에 윤종신 씨 노래 중에 ‘Merry Christmas only you’ 라는 곡을 듣고 윤종신 씨, 유희열 씨 일러스트도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 뮤직비디오 감독님이 트위터 프로필 사진으로 그걸 사용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것도 많이 모이면 언젠가 전시를 할까 생각 중이다.

요즘 전시를 많이 하던데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는지
관람객들이 나를 여자로 본다는 것? 내가 전시장을 지키고 있으면 아르바이트생이나 작가의 남자친구쯤으로 여긴다. 처음엔 수군대는 걸 몇 번 듣고는 작가가 남자라고 친절하게 답해줬는데, 요즘은 그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사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다.

전시회에 방명록 대신 방명컵이 있던데 이름 쓰는데 힘들었다.
방명컵을 작성하신 모든 분들이 다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그만큼 힘들게 그리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어필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바로 이거다. 맛 좀 봐라!

이미지 출처: 김수민 작가

필링펀치2013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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