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입사지원기

올해만 두 군데의 일터를 그만뒀다.

가만히 숟가락 빨고 있기엔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나 몇 달 전 여러 기업이 모인 채용 설명회(?) 박람회(?) 같은 곳을 갔다.

난 뒷끝이 강한 사람이라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 자리를 기획한 사람들은 그 행사를 ‘파티’라 지칭했다.

좋은 취지의 자리였고 그런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그 채용설명회(이하 설명회)의 정보를 미리 입수한 나는 구인을 원하는 5~6군데 기업들의 정보들을 보면서 꼭 다니고 싶은 회사를 발견했다.

회사 홈페이지를 보니 서포터즈 같은 것을 뽑고 있었다.

당연히 그 회사의 환심을 사고 싶던 나는 그 회사를 지원함과 동시에 서포터즈를 지원했고, 그 회사의 채용담당자를 만나볼 생각에 심쿵하며 설명회를 찾았다.

 

설명회는 각 기업의 소개 PT로 시작됐다.

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회사는 가장 늦게 나오는 법.

길고 지루했던 다른 기업들의 소개가 지나고, 드디어 그 회사의 대표가 등장했다.

그 대표는 마른 몸매와 스타일링이 자기관리를 꽤 잘한다는 인상을 주는 커리어우먼이라 다른 대표들 중 단연 돋보였다.

게다가 관중을 포복절도 시키는 언변까지 갖춘 어디서든 인기 많을 신녀성.

웃음이 넘치는 PT가 끝나고 채용담당자와의 미팅시간이 되자, 그 대표에게 한 눈에 반한 취중생들이 본인들의 지원회사들을 버리고 대표에게 우글우글 달려들어 외모와 말빨에 대한 찬사를 했고 여기까지는 참 훈훈했다.

 

그런데 면담이 시작되자 마음이 사뭇 불편해졌다.  

“우리회사가 서포터즈를 다 뽑긴 했지만, 직업 찾아 여기까지 온 너희들을 특별히 서포터즈 합격자에 넣어주겠다. 일단 우리 회사를 지원한다면 0월0일0시까지 우리회사로 오라”는 시혜 가득한 대표의 말이 명치에 툭 걸렸다.

그 후에 이 자리가 스타-팬클럽을 연상하는 희안한 풍경이었음을 인지했다.

그 풍경이 민망한 나는 필요한 질문만 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문제의 0월0일0시가 되었다.

고민 끝에 그 회사에 도착하자, 서포터즈 합격자와 취준생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업종에 관련한 교육이 시작됐다.

대표가 직접 교육에 나섰는데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답게 사회에 대해 정의로운 시선도 있고, 자본주의에 대한 건전한 비판의식도 갖고 있는 신녀성이더라.

앉아있는 사람들을 쭉 스캔해 보니 당연히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이니 원래 서포터즈로 선발되어 온 사람보다 직원을 희망하는 구직자들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대표의 정의감 넘치는 특강이 끝난 뒤, 이 중에서 서포터즈를 다시 거른다는 통보가 이어졌다.

그러며 나온 서포터즈의 역할은 산 넘어 산, 웬만한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이 서포터즈에게 다 떠넘겨진 것이었다.

진행비는 있었으나 활동에 필요한 금액 외 인건비는 전혀 없었고, 동영상 제작 등의 고스킬을 요하는 컨텐츠 작업을 하는 것도 “그거 별 거 아니잖아” 식의 주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표의 한 말씀.

“늬들이 서포터즈로써 할 일을 제안해 봐라. 제출은 다음주까지다. 이 중에서 1/3가량만 서포터즈를 시켜주겠다. 그리고 추후에 활동이 내 맘에 들면 직원도 시켜줌.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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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이런 구직자였다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겠지… (MBC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18회)

 

회사가 원하는 서포터즈상은 ‘질소과자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건널 정도의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지닌 대학생’ 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온 지원자들은 대충 첫 직장을 구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 아니면 나이 경력 등 스펙을 이유로 일반회사에 지원하지 못하는, 전자나 후자나 패기보단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내세운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두 벙 찐 표정으로 “이런 자리인지 몰랐다” 했지만, 고정적인 수입을 바라는 나이 찬 언니들 중 몇 몇 언니들은 다른 서포터즈 지원자들까지 챙기며 자발적으로 직원역할을 하고 있었다.

순간 어느 포지셔닝을 할까 잠깐 고민이 되었지만 부담을 느끼며 이력서를 가방에 넣고 집으로 떠나는 이제 갓 학생을 벗어난 친구들과 함께 서둘러 회사를 떠났다.

아, 빌어먹을 청년실업 만세!

 

p.s 이건 여담이지만 기업 PT중, 어느 사회적기업의 대표가 그 동안 싹수 노란 직원들에게 시달리셨는지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너님들의 환상을 깨주려 충고하려고 나왔다” 는 말로 충고를 시작했다. 

“사회적기업이라고 공익사업만 하는 건 아니다”, “같은 이유로 연장근무와 주말 근무에 대해 문제제기 하며 회사를 적으로 두는 사람이 불편하다” 라고.

구직자와 구인자 모두가 평화로울 지점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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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상황과는 조금 다른 예시 이지만 정유미가 예뻐서 덧붙이는 짤. 어떤 기업은 면접 때 손담비 춤을 춰보라 요구한다기도 카더라.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 中)

 

 

#갑질인듯갑질아닌갑질같은너 #서포터즈따위싹다없어져야함 #열정무임금

스타벅스 그녀에게 스토리를 선물하다 <컵 아티스트 김수민>

고고한 스타벅스 마크 ‘세이렌’이 혼자 고기도 구워먹고, 소파에 누워 TV도 보고, 말춤도 춘다. 이 사람, 도대체 컵에 왜 이런 걸 그리는 걸까? 가장 상업적인 물건에 아트를 하는 남자, 김수민이 궁금하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처음 그를 만난 건, 누군가에게 링크돼 좋아요 버튼이 잔뜩 찍힌 유튜브 영상. 덩그러니 놓인 스타벅스 컵 위를 ‘세이렌’만 남겨두고 흰 물감으로 덮어버리더니 초록색 마커로 그림을 그린다. 위에서 내려 보기도 아래에서 올려 보기도 돌려보기도 하면서 고심하는 듯 보이지만, 다시 단호하게 그림을 그려나간다. 작업과정을 빠르게 편집했지만, 그리는 이의 고뇌가 그대로 느껴진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누구나 빵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할 터. 작가의 손길로 다시 태어난 세이렌은 엉뚱한 몸짓으로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이건 뭘까? 스타벅스 프로모션 행사일까? 이 사람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 순식간에 머릿속이 오만가지 느낌표로 가득 채워진다. 영상을 몇 가지 더 찾아보고, 모든 SNS를 총동원해 사찰했다. 세상에, 단순히 컵에 그림만 그리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프로필이 하도 길어 스크롤을 계속 내려야 한다.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 영업사원이었던 잘난 이력도 있고 통역도 한단다. 오케이, 이번 파워피플은 바로 당신이다.

일상에서 추출한 깨알 웃음
김수민 작가에게 예전의 직장생활은 빼놓을 수 없는 일. 잘 나가는 회사였지만 당분과 카페인으로만 겨우 버텼다. 그림에 대한 열망과 조직생활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2년 만에 모든 걸 버리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그는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컵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김수민 작가에게 컵 아트란 개인의 작품이기 이전에 일상의 기록이기 때문에 남에게 줄 수 없을 정도로 하나하나 각별하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절대 심각하거나 난해하지는 않다. 인터뷰 내내 작품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스테프들에게도 자신도 웃고 싶어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에 유머를 많이 담는다고 얘기한다. 가끔은 그림을 그리다 혼자 피식 웃을 때도 많단다.

한때 된장녀의 상징이었던 콧대 높은 스타벅스의 아이콘 ‘세이렌’이 망가지는 모습도 컵 아트의 묘미이다. 하지만 스타벅스 컵에 그림을 그리게 된 건 지극히 우연과 게으름이 빚어낸 필연이었을 뿐. 작업실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 스타벅스에서 매일같이 커피를 테이크 아웃 했던 그가 조금만 더 부지런해 컵을 재깍재깍 버렸다면 다양한 표정의 ‘세이렌’은 탄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는 작업실을 대청소하며 쌓아둔 컵을 버리려다 아까운 생각에 그림을 그렸다. 빈 종이에 비해 부담이 없어져 상상력이 확장되는 느낌, 그것이 그와 ‘세이렌’의 첫 만남이었다.

아메리카노 트리플 샷의 의식
그럼 그 많은 컵은 대체 어떻게 공수할까? 협찬을 받느냐고 물었더니, 매일 한두 잔의 커피를 구매한단다. 그렇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늘 뜨거운 아메리카노만 마셔야 하는 것이 작가의 고충. 텀블러에 커피를 받고 그냥 종이컵을 달라고 하면 안 되냐고 묻는 사람도 많지만 그에게 있어서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고, 그림을 그리는 일 전부 생략할 수 없는 완전한 작업이다. 한 가지 원칙이 더 있다면 아메리카노는 반드시 트리플 샷으로 주문할 것. 그는 ‘고집’이라 표현했지만, 작품에 임하는 작가의 신성한 의식이 아닐까.

김수민 작가 Q&A Cup
굳이 컵아트를 고집하는 이유는?
컵의 모양이 둥근 모양이라 계속 그려나가다 보면 만나게 된다. 사진을 찍거나 정면에서 보면 일부분만 볼 수 있는데 직접 360도 돌려서 봐야 컵의 전체를 다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 요소다. 그래서 내 작품은 돌려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컵 외의 다른 작업은 하지 않는가
또 다른 개인 작업이 있다면 트위터 에그일러스트가 있다. 예전에 윤종신 씨 노래 중에 ‘Merry Christmas only you’ 라는 곡을 듣고 윤종신 씨, 유희열 씨 일러스트도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 뮤직비디오 감독님이 트위터 프로필 사진으로 그걸 사용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것도 많이 모이면 언젠가 전시를 할까 생각 중이다.

요즘 전시를 많이 하던데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는지
관람객들이 나를 여자로 본다는 것? 내가 전시장을 지키고 있으면 아르바이트생이나 작가의 남자친구쯤으로 여긴다. 처음엔 수군대는 걸 몇 번 듣고는 작가가 남자라고 친절하게 답해줬는데, 요즘은 그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사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다.

전시회에 방명록 대신 방명컵이 있던데 이름 쓰는데 힘들었다.
방명컵을 작성하신 모든 분들이 다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그만큼 힘들게 그리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어필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바로 이거다. 맛 좀 봐라!

이미지 출처: 김수민 작가

필링펀치2013 vol.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