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결항사태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4월 2일. 내가 출장으로 제주에 도착한 31일부터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던 날들 중 하루였고, 4.3사건 67주년을 맞는 전날이었다. 제주도 날씨는 정말 신기한 것이 한라산을 기준으로 나뉘어있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날씨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단다. 내가 제주에 있었던 사흘 동안도 제주도에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번갈아 가며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신기하게도 제주의 곳곳을 순회하는 동안 100%의 확률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덕에 기분 좋게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예정보다 몇 시간 일찍 게이트로 가 지친 몸을 쉬던 중 비행기가 지연되거나 운항이 취소되었다는 안내방송이 쉬지 않고 나왔다. 처음엔 그 비바람을 다 피하고 다녔기에 잠시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으나 이미 몇 시간 전부터 운행이 취소되는 비행기가 속속 늘어나며 불안이 시작되었다. 저가항공, 고가의 땅콩항공을 막론하고 어느 하나 정상운행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 많은 제주-김포행 비행기가 속속 결항된데다 내가 예매한 비행기의 시간도 한 시간 가까이 지연되던 순간, 오늘 내에 서울로 돌아가지 못할 거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먹었다. 마음 속에서 불안과 각오(?)를 몇 번 반복하던 중, 나의 탑승번호가 전광판에 뜨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가장 스릴 넘치는 비행기를 타고 식은땀을 흘리며 서울에 도착했다. 쿵쿵 뛰는 심장을 누르며 지하철 타는 곳으로 가는 길에, 아뿔싸 꼭 공항에서만 환불 받아야 하는 비행기 티켓이 생각났다.

 

 

 

역시나 체크인 부스는 인산인해. 얼굴에 짜증을 덕지덕지 바른 사람들이 항공사 부스를 가득 메웠다. 그래도 라인마다 각각 열댓 명 내외인데다 응대하는 직원의 숫자도 기다릴 만 하겠다 싶었다. 미리 말하자면, 이건 내 판단오류였다.

 

내 앞에 서있던 사람들 중 1/3 가량 줄었을 때는 순조로웠다. 사람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지만 내가 제주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를 생각하니 충분히 이해되었다. 2/3 구간에 다다르자 점차 대기시간이 길어졌다. 삼십 분이 지나자 내 앞에 세 사람 정도가 남았다.

‘그래, 조금만 기다리면 나도 환불을 받을 수 있을거야.’

 

 

순간 대기선을 이탈한 옆에서 한 아주머니의 고성이 시작됐다.

“아니 날씨가 이래서 비행기가 못 뜰걸 당신들도 예상을 했을 것 아녜요. 짐을 부치기 전에 미리 얘기를 했었어야죠.”

아주머니의 고성이 10분도 넘게 반복되자 누구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미리 수화물을 부쳐버렸고, 그 이후에 결항소식을 들은 상황. 이미 부쳐버린 수화물이 아주머니에게 다시 돌아가지는 못하는 상황이었고, 아마도 그 안에는 그 날 하루를 서울에서 보낼 때 필요한 소지품이 있었나 보다.

 

아주머니의 성난 목소리가 주사처럼 반복되자 내 바로 앞에 있던 아주머니가 성난 아주머니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이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이런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기다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해결 안될 일로 이러시면 안되죠.”

정말 쿨하고 의로운 아주머니였다. 제 3자가 나서 중재를 하자 성난 아주머니는 울먹울먹하다 자리를 떴다. 아주머니는 떠났지만 대기선 여기저기에서는 도미노처럼 고성이 터졌다. 그런들 어떠하리. 앞에 3명만 물리치면 나도 승무원을 만나 환불을 받을 수 있다. 그 다음 대기선에서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내 또래의 여자가 있었다. 오늘 꼭 제주로 돌아가야 하는 여자였나 보다. 여자는 승무원을 붙잡고 눈물 콧물을 다 빼면서 10분 넘게 사정을 이야기 하다 울다 지쳐 내 앞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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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 효리였다면 이렇게 예쁘게 울었겠지만…

 

그러고 다음 사람이 가고, 바로 내 앞의 쿨한 아주머니의 차례가 되었다. 웬일인지 승무원과 몇 마디를 주고받은 쿨한 아주머니도 단단히 뿔이 났다. 갑자기 쿨한 아주머니의 언성이 높아졌다.

“난 당신이랑 얘기하기 싫으니까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매니저 불러와요.”

순간, 뒷 줄 어딘가에서 새로운 남자가 등장해 아주머니와 승무원의 대화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우리(순식간에 연대)가 그깟 비행기 값 몇 푼 환불 받으려 이렇게 기다리는 줄 아냐. 빨리 언제 어떻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내놔라.”

의 말을 단어와 문장조합만 바꿔가며 쿨아주머니와 함께 반복했다. 이쯤 되니 슬슬 무서워졌다.

 

 

 

과연 난 환불을 성공적으로 받고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숱하게 고성을 지르거나 울먹이는 사람들을 응대한 승무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나는 빨리 이 공황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때 다른 용무로 지나가던 다른 승무원이 있길래 다짜고짜 붙잡고 애원했다.

 “전 오늘 비행기 결항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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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정말 생존의 위협이 느껴졌다.

 

 

 

#하지만나는공항에서한시간을더보내고집으로갈수있었다 #지나친갑질은아무상관없는제3자에게피해를유발할수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