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을 추억하며

짤: MBC <무한도전>, 노홍철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임을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는 사람을 한 번 싫어하면 야멸차게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오늘은 한 사람을 싫어하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실 이런 글쓰기는 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써야 할 명분은 있다. 소위 ‘진보단체’ 라는 곳에 공감하여 활동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애티튜드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 그 녀석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전해들은 기념으로 그 녀석과의 첫 만남을 다시 한 번 추억해보기로 했다.

 

그 녀석의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는 생략하겠다. 나는 그 곳에서 활동을 막 시작하기로 한 그 곳의 새내기였고, 그 녀석은 내가 속한 팀의 대장쯤 됐다. 원래는 전체 짱을 먹고 싶었지만 투표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우리 팀은 녀석과 나 그리고 한 명이 더 있었지만 앞으로 다른 한 명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나는 막 같은 팀이 된 사람들을 처음 만나러 어느 카페로 갔다.

공교롭게도 그 날의 그 자리는 어떤 단체와 연대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첫 미팅 자리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팀에 연대하기로 한 어떤 단체의 대표까지 네 사람이 모여 함께 진행해야 할 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대화를 했다’라는 표현보다는 양 팀의 대표의 ‘일방적인 발언만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 같다. 그 자리는 그 단체와 어떤 이벤트를 함께 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서로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으나 안타깝게도 그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는 우리의 역량에 비해 너무 컸고, 우리는 그 기대의 발끝 정도만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조건 A를 해달라’ 와, ‘무조건 Z를 해주겠다’ 에 대한 말이 표현만 바뀐 채 수없이 오갔다. 그 두 사람에겐 상대의 말을 듣고 조율할 여지는 1%도 없었다. 대화가 아닌 상대에게 꽂히지 않는 무의미한 언어들만 툭툭 떨어뜨리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실망만 남긴 채 그 대표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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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대화 수준을 보고 난 뒤의 심경.jpg

 

이제 ‘우리 팀’만 남은 상황. 녀석은 간단한 나의 신상을 몇 마디 묻더니 본격적인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이것도 해봤고, 저것도 해봤다네 블라블라…”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선배’인지를 어필하고 싶었겠지만, 연대하겠다는 단체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나니 녀석이 해봤다는 그 많은 것들이 그리 대단히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처음보는 유형의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묻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으니 슬슬 짜증이 났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그저 자기 편도 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 녀석이 장시간 떠들었던 무의미한 자기 PR에 대해 세세히 나열하고 싶지도 않고, 핵심 발언만 정리해보자면.

  1. 나는 서울대다. 안물안궁
  2. 나는 장관이 될 거고, 그 다음에는 대통령을 할거다.
  3. 내가 대통령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친구들이 나에게 잘하고 있다. 그래서?
  4. “그러니까 너님도 저한테 잘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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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너무 충격적이라 순간 말문이 막혔다. 처음 만난지 1시간 밖에 안되는 사람에게 언젠가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테니 나에게 잘 보이라는 패기. 잠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내가 어디가서 쉽게 무시당하는 타입은 아닐텐데… 머리가 멍해지며 나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다 들었다.

정신을 좀 가다듬고 답했다.

“말씀 잘 하세요. 지금 하신 말씀, 나중에 대선에 나오면 다 할거니까요.”

 

그 후에도 이어지는 혈압이 요동치는 대화를 마친 뒤 헤어질 때 쯤, 그는 나를 자신보다 어린 대학생이나 취준생 쯤으로 봤다고 했다. 처음 본 사람을 <나이어린, 여자, 후배>로 규정하고 나니 멋대로 꼰대질과 허언을 시전한 것이다(참고로 녀석은 뒤늦게 나에게 나이를 묻고, 기혼사실을 알게 되자“아이는 내년에 낳으면 되겠네요.”라는 말을 던졌다).

 

그 녀석과의 어이없는 첫 만남이 있고 한 달 쯤 지나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서 그 녀석이 그 당시 서울대 대학원을 준비중인, 경기도 어느 대학에서 학부를 마친 녀석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허허허 누나도 지방대 나왔는데 뭐. ^^ 내가 녀석과의 추억을 얘기하니 사람들은 그 녀석이 농담을 하는 방식이 원래 그렇다며 농담일 거라고 웃어 넘겼다. 아무리 농이고 장난이여도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는 최소한의 예의라는게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잊지 못할 첫인상을 남겨준 그 녀석이 이번 총선에 출마할 거라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 그 녀석을 처음 만난 날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봤다. 그 녀석이 만약, 정신 못차리고 대선에 출마한다고 하면 난 그 녀석의 실명을 까고 다시 한 번 디테일한 썰을 풀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