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농활이고 보시야” _ 양양 김혜영 농부

당신에겐 어떤 스승이 있는가.

내 주변의 많은 스승과 친구는 농부다. 그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는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예고없이 집 앞에 놓인 택배 상자 속에는 갓 수확한 잘 익은 야채가 한가득 들어있기도 하고, 몸이 안좋다고 하면 어김없이“뭐가 어디에 좋다더라”는 연락 후에 택배가 도착한다.

내가 어떤 맛과 식감을 좋아하는지 찰떡같이 아는 농부는 “꿀은 여기가 맛있다” 든지, “돼지고기는 저기가 좋다”는 어느 매체에서도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내게 그런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 되어주는 김혜영 농부를 만나러 강원도 양양으로 떠났다.

 


 

토종 가지를 수확하는 김혜영 농부

 

“을지로 예술가와 토종종자에 대한 워크숍을 열기로 했어요. 베이크드 빈도 만들 생각인데 토종 강낭콩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래? 강낭콩은 아직 덜 여물었으니 대신할 맛있는 콩을 몇 가지 보내줄게”

“그럼 제가 내일 양양으로 직접 가서 도와도 드릴겸, 밭 구경 갈게요!”

 

사람이 찾아오면 먹이고, 재우고 마음 쓸 일도 손 쓸 일도 많다. 하지만 농부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나는 오래 전부터 약속 잡고 질질 끄는 것 보다야 이렇게 갑자기 오는게 더 좋아!”

 


게스트하우스로 쓰는 농가에서 꾸러미 정리를 마친 김혜영 농부

 

김혜영 농부는 밭과 가까이 있는 빨간 지붕이 있는 낡은 시골집을 개조해 거둔 농산물을 보관하기도 하고, 꾸러미와 갈무리 작업을 한다.

이 집은 그의 세 자녀가 친구와 함께 방문했을 때나 이따금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쉬어갈 때를 위해 불편하지 않도록 수리했다.

 

영화 일을 한다는 그의 딸이 달 액자를 걸어두었다.

 

드림캐처가 걸린 창문 너머 마당에는 수확한 참깨가 널려있다.

 

문가에는 농부가 선물받은 전통 탈을 걸어두었다. 뒤로 붙어있는 글귀는 “지렁이도 살고 우리 아이들도 살고 어머니 지구도 살고!” 그가 농사를 짓는 방향과 맞닿은 문장이다.

 


농부의 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죽도해변. 이곳에서 맥주와 커피를 마시며 농부와 많은 담소를 나눴다.

 


 

하우스 안에는 벼와 수박, 호박, 당근 등을 섞어짓기한다.

 

토종고추는 장마철에 탄저병이 한차례 쓸고 갔으나, 새로 나는 녀석들은 튼튼했다고 한다.

 

틀밭에는 들깨가 자라고 있다.

 

당도 높은 토종수박을 선물로 받았다.

 

토종 돼지파와 삼층거리파

 

주황색으로 핀 꽃은 천연 살충제 역할을 하는 메리골드. 메리골드 앞으로는 순을 정리하면서 밭에 툭 던졌더니 예고없이 자라났다는 토종 물고구마가 자라고 있다.

 

 

김혜영 농부는 오로지 토종 농사를 짓기 위해 서울에서 강원도 양양으로 왔다.

그에게는 자녀들을 대안학교를 보내기 위해 장흥으로 이주해 농사도 짓고 농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했던 이력도 있다.

그러다 만난 이영동 농부의 철학과 열정에 반해 ‘사부’로 모시며 농사의 매력을 알아가며, 더욱 깊은 의미를 새기게 되었다고.

그래서 그의 이야기에서 이영동 농부는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아무런 보답도 없이 농부의 집에서 쉬어가고 애써 모은 토종 콩을 잔뜩 받아가게 되어 원랜 밭일을 도우려 했지만, 그의 집에서 머무르는 1박2일동안 서퍼들의 성지인 죽도해변과 맛집을 소개하는데 시간을 할애해 줬다.

보답을 못해 미안한 마음을 표하자 돌아오는 말.

“아우, 됐다니까. 나처럼 혼자 농사짓는 농부에게는 찾아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농활이고 보시야”. 

 

사실 농부가 씨앗을 나누는데 댓가를 바라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바로 ‘사부’ 이영동 농부의 가르침 때문이다.

‘반드시 채종하고, 씨앗은 반드시 나누고, 팔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농부가 안겨준 토종 콩, 제철 한 가득을 정리하고 한번 키워보고 싶다하니 뿌리째 뽑아준 아스파라거스를 옮겨 심었다.

정리가 끝난 줄 알았더니 어느 틈에 있었는지 농익어 씨방이 벌어진 틈에서 씨앗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씨앗을 담으며 농부와의 대화를 곱씹어 본다.

장흥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부용화

 

“선생님 이 꽃은 뭐예요? 너무 예뻐요!”

“글쎄? 맞춰봐”

“음… 히비스커스?!”

“아니야, 이건 부용화야. 처음 보지? 장흥에서 씨앗을 가져왔어. 장흥에 부용화가 참 많았거든. 그때의 초심을 잃지 말고 농사 짓자는 마음으로 심어놨어.”

 

토종해바라기🌻 아무말 수확기

올해 수확한 해바라기. 나름 실하다 (아래 어미를 생각하면…)

 

 

작년에 씨앗을 받아 옥상에 심은 토종해바라기를 수확했다.

2016년의 삼두(?) 해바라기. 풍선초와 수박, 코스모스, 상추, 잡초, 앵두, 바질이 더 잘 보이고 해바라기는 맨끝에 있는게 함정이다.

 

2015년 말에 ‘토종이 자란다‘에서 받아 2016년에 심었던 해바라기는 옥상 화단의 대대적인 방수공사로 인해 한번 뽑혔다 다시 심긴 역사가 있다.

엄연히 우리 가구가 농사짓던 화단이었는데(우리 빌라는 희망자 각자가 화단의 일부에 농사를 짓고 있다) 말도 없이 공사를 강행해 반장아저씨와도 갈등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죽게 된 작물도 많아 사실 다시 살아날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던 녀석이다.

토종해바라기는 ‘1개체 1두’가 특징이라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3두가 되어버린 비운의 녀석.

 

노심초사하며 반쯤 포기상태로 지켜봤지만, 잘 자라주어 이렇게 자식을 만나게 된다.

3두 해바라기의 3형제

 

물론 전부 우량아로 자라주지는 않았다.

 

잘 자라지 못한 아이들은 ‘슬로우 슬로우 퀵 퀵’에서 진행한 토종씨앗 워크숍(나중에 반드시 후기를 남기겠습니다ㅠㅠ)에 꽂아두었다. 워크숍의 분위기와 제법 잘 어울렸다.

 

잘 자란 해바라기는 다시 엄마가 되어 자손을 남긴다.

 

해바라기 씨앗은 잘 갈무리해야 먹을 수 있고, 또 주변에 나눠 대를 이을 수 있다.

이렇게 뜯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아프다 닝겐아 좀 살살 뜯어라😫

 

해바라기 씨앗은 사랑입니다💕

 

작년엔 해바라기 씨앗을 껍질째 볶았다 낭패를 봤다.

자주가는 맥주집(aka Keg. B)에 들고 갔으나 겉은 타고, 껍질은 잘 안 벗겨지는데다 하나도 속은 하나도 안 익어 안하니만 못한 해바라기 씨앗 구이를 먹었는데…

이번엔 이틀동안 껍질을 깠다(!) 해바라기 씨앗은 내 엄지손톱 기준으로 1/10크기로, 매우 작다.

이틀동안 껍질을 깠는데도 물구하고 세 줌 정도 나와서(…) 결국 냉장고에 장기투숙하던 잣과 아마란스를 다 때려넣고 구웠다.

해바라기를 기르고, 수확하고, 씨의 껍질을 벗긴 그 과정이 너무나 지난하여 먹기가 아까워 유리병에 모셔놨는데 벌써 다 먹었다.

 

집에 있는 견과를 함께 때려넣고 볶아먹으면 꿀맛 with 후추&소금

 

해바라기 씨 껍질을 까며 다시 한번 느꼈다.

인간이 먹는 건 얼마나 힘들게 얻어지는지.

나란 인간 정말 별 거 아니구나(뜻밖의 해탈).

 

먹고나서 두번 느꼈다.

이거 하루만에 열 줌 먹겠다고(잣 때문에 부피 증가) 나는 이틀동안 대체 뭘 한 건지(심지어 오른쪽 엄지손톱 부근에 물집도 잡혔다).

근데 이 와중에 진짜 맛있고 난리.

소금과 후추를 적당히 넣어 간을 하고, 잣에서 기름이 많이 나오니 그냥 그렇게 10분 달달 볶았을 뿐인데 정말 고소하고 맛있다.

아마란스가 중간에 톡톡 터지는 식감도 별미다.

정말 고생스럽지만, 내년엔 더 많이 심어서 일주일까고 더 많이 먹을거다.

 

아무말 수확기 끝

부엌 창가에서 전하는 근황

최근 몸과 마음이 많이 상했어요.

그래서 요즘 하루의 1~2끼 정도는 반드시 샐러드를 먹고,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는 풀 먹인 소고기를 사서 수비드로 스테이크를 해 먹는 삶을 시작했는데요.

제가 텃밭에 토종씨앗으로 농사지으며 난리를 치는 통에 지인들은 당연히 이런 식단으로 살지 않을까 추측했다던데, 사실 인스턴트와 과자만 먹다 최근 고지혈증 판정을 받은 저로서는(…) 저 조차 당황스러운 변화입니다.

 

사실 이 변화는 남편이 아니었으면 시작하기 어려웠던 일.

요즘 데이브 아스프리의 <최강의 식사>에 심취한 남편이 아스프리식 ‘완전무결한 식사(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어요)’를 따르며 아침엔 방탄커피를, 저녁에는 수비드 스테이크를 해 주는 덕에 저는 샐러드를 다듬고 메이슨 자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채소를 씻고 다듬어 볼에 정리해두면 단 한 번의 노동으로 며칠을 편리하게 먹을 수 있답니다.

 

이렇게 자(jar)에 정리해두면 일주일이 편해요.

 

먹기 좋게 다진 채소와 반숙계란 1알로 샐러드 자를 만드는데요.

반드시 맨 위에 키친타올을 접어서 넣고, 랩핑을 한 번 해줍니다.

키친타올은 1주일 이상 채소가 무르거나 시드는 것을, 랩은 물기가 많고 수증기가 많이 맺혀서 뚜껑을 쉽게 녹슬게 만드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먹을때마다 야채를 꺼내 자를 가볍게 헹군 뒤 열탕해 보관하고요, 접시에 담긴 샐러드는 올리브유와 발사믹 소스만 곁들이면 보기좋고 맛있는 샐러드 한 접시가 완성됩니다.

 

남편이 보내온 점심 인증샷

 

남편도 점심마다 국이랑 샐러드자 하나씩 회사로 싸 갑니다.

데이브 아스프리 가라사대 “점심에 탄수화물을 먹으면 졸리니 저녁에만 먹거라”,  정말 점심에 탄수화물을 먹지 않으니 신기하게 잠이 잘 안와요.

불과 몇 달 전을 돌아보면… <빈속에 출근 -> 출근 전 과자와 초콜릿을 산다 -> 아침으로 먹는다 -> 커피를 마신다 -> 탄수화물 위주의 간식과 점심을 먹는다 -> 커피를 마신다 -> 탄수화물 위주의 간식을 먹는다 -> 커피를 마신다> 로 일상을 보냈는데요(…)

먹는 것만 바꿔도 커피를 하루 한 잔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아보카도 씨앗 두 알

 

그래서 이렇게 남아도는 시간과 야채의 흔적으로 요새 이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얼마 전에 이런 글을 쓴 적 있습니다(…)

그래서 ‘아보카도 따위 키우지 않겠어!’ 다짐했는데, 가콰몰리를 해먹고 나니 인간이 생각보다 단순해서 이런 짓을 해보고 싶더군요.

씨앗 한 알은 보름 전에, 나머지 한 알을 3일 전에 물 속에 담가뒀는데요.

 

흙사진(…) 주의!

 

보름째 된 녀석은 씨앗 아래에 큰 균열이 생겼어요. 곧 뿌리가 나올 것 같아요.

나머지 막내는 애플민트를 함께 물꽂이 하려 꽂아놨더니 물이 빨리 빨리 사라지는게 정말 신기해요.

살아있음을 알리는 이런 흔적들이 사람을 설레게 합니다.

 

샐러리 밑동도 엊그제 이렇게 물에 담가뒀는데, 흙에 바로 심어야 뿌리가 나는 것 같아서 지금은 화분으로 옮겼습니다.

집 북쪽에만 창문이 있어 늘 이런식으로 북쪽 창틀에 화분을 옮겨놓곤 하는데 이제 포화상태네요.

식물 때문에 겨울에도 이중창 모두 다 닫고 살기가 참 힘들어요.

 

창틀에서 밀려난 아이들은 이렇게 햇빛을 보곤 합니다.

 

건강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최근에 몸이 아파 건강검진을 했는데 다행히 고지혈증과 비타민D 결핍 정도로 그쳤어요(원래 더 심한 정도를 예상하고 갔었거든요).

햇빛 많이 보고, 좋은 음식 먹고 건강히 겨울을 납시다! 🙂

(오늘 너무 추워져서 드리는 말씀)